일기
SPD Life 2007/09/19 19:34내가 일기를 썼던 것은 사실 내 평생 몇 번 없는 일이다.
초등학교시절 그림 일기를 쓰는 것은 숙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이 당시에도 워낙에 일기 쓰기를 귀찮아해서, 미뤘다가 한 번에 쓰거나, 그마저도 띄엄띄엄.
결국, 개학때는 "에이, 대충 몸으로 때워"의 배짱으로 버티기도 여러 번이었던 것 같다.
이런 자세에서 쓰는 글이 재미있을리가 없다.
내 일기의 내용은 90% 이상이 "난 오늘 뭐 했다. 그래서 재밌었다. 다음에 또 하면 좋겠다. 참 좋았다." 류의 글이었다. 내 생각과 창의성은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글들.
아마 이 블로그의 포스트들이 대체로 지루하고 뻔하다면, 초등학교시절부터 쌓아온 내 글쓰기의 기초가 그대로 그 바닥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리라.
반면, 내 동생은 당시에도 무척 창의적인 글을 써서 어머니께서 즐겨 읽고 그 내용을 우리 가족 모두가 나눴던(?) 기억이 있다. 우리 가족이래봐야 동생을 제외하면 나와 어머니 뿐이겠지만, 보통 우리 가족의 범위는 외삼촌들과 이모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외갓집 식구들을 의미했다.
그러니, 동생이 무슨 일기의 재미있는 내용을 쓰면 동생은 그것과 관련된 친척들의 온갖 코멘트를 들어야 했던 것 같다. 본인은 자신의 일기 내용이 자꾸 퍼지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지만, 우리 가족들은 그의 의견보다는 우리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이다. 뭐, 많이들 그러하듯 동생도 일기를 밀려서 썼던 것 같다.
병아리던가, 좌우간 뭔가 살아있는 것을 사왔다. 그리고, 그것을 키우다가 얼마 못 가 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이 내용을 일기로 옮기는 것이다.
"7월 18일 날씨 맑음. 난 오늘 병아리 한마리를 사왔다. 이뻐서 샀는데, 키우다 보니 3일 뒤에 죽었다. 병아리를 묻어주며, 슬퍼했다."
이런 식이다. 아이의 솔직함을 그대로 내보인 그림일기. 당연히 선생님도 혼을 내지는 않았고.(어찌 혼을 내겠는가...)
어린 시절의 저런 창작물이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도 좀 더 파릇파릇 튀는 생각들로 살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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