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워: 현재까지 내 나름대로의 정리
SPD Life 2007/08/11 15:59그럼에도, 속 안에 갇힌 생각들을 정리하고 오늘을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디워. 영화는 못 봤지만, 많은 기사와 100분 토론. 그리고 여러 사람의 반응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러니, 나는 당연히 디워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다. 하지도 않을 것이다.
1. 심형래 감독은 점점 밉상이 되어간다.
심형래 감독의 다른 모든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사회적 편견 있었겠지. 고생 많이 했겠지. 열심히 노력했고, 그 성과도 있겠지.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들을 물귀신처럼 물고 들어가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떠든다고 혼을 내는 선생님에게 "XX도 떠들었는데요?"라고 말하는 초등학생 수준의 답변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이 영화를 만들었으면 벌써 난리가 났는데, 심형래가 만들어서 혹평 일색이다.
트랜스포머, 쥬라기 공원 등등도 스토리가 뭐가 있냐...등등.
앞에서 말했듯이 영화를 안 봤기에 그 비교가 정당하냐 안 하느냐를 따질 수는 없지만, 그전에 이런 이야기는 감독이 할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정말 구차한 변명이다.
| http://www.cineline.net/news/news.asp?code=person&num=1&mode=view <--- 용가리 시절의 인터뷰 기사. 이때도 일단은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깎아내리면서 시작한다. 투캅스 3까지는 일단 봐준다 치더라도,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을 같은 수준에서 놓고 본다. 이쯤 되면, 영화를 대하는 관점이 어떤지를 알 수 있다.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영화에 대한 철학이 없다. 당시, 공언했던 수많은 외국 회사와의 계약 문제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듯 하다. 2. 100분 토론. 대체 왜 한 거지? 디워가 한국 영화의 희망이라. 일단 대체 뭐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영화 산업의 희망일까?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희망일까? 영화 산업의 희망이라면, 디워는 분명히 논해야 할 가치가 있는 영화일 것이다. 어찌 되었건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영화산업이 크게 뜬 한 영화로 좋아지는 것일까? 디워가 한국의 다른 영화들에 도움이 될까? 가장 먼저 걱정되는 부분은 결국 이러한 논의가 한국 영화가 추구하는 영화의 방향이 헐리우드에 있음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100분 토론에서 하재근 평론가는 "결국 한국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스크린 쿼터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완성도"이다. 대체 무엇이 그 완성도를 결정 짓는 것일까? 한국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이 마이클 베이의 영화들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라는 이야기인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들이 스티븐 스필버그에게는 안 되는 영화라는 의미인가? 박찬욱 감독은 도무지 쿠엔틴 타란티노에게는 안된다는 이야기인가? 결국, 이러한 문제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디워"와 대립시키는 양상까지 발전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 댓글에 보니, "괴물은 외국 자본으로 끌어들여 온데다가, 저는 보다가 지겨워 죽는 줄 알았어요. 괴물이 언제 나오나 했더니, 잠깐 나오고 쏙 들어가버리고. CG 티도 무지 나고. 디워에 비하면 괴물은 발 뒤꿈치도 못 쫓아와요."라는 네티즌이 있었다. "괴물"과 "디워"의 위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들이 바라는 것은 헐리우드 수준의 CG를 자랑하는 매끈한 영화인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영화에 투입되어야 하는 자본과 기술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분야이다. 그리고 한국의 산업적, 경제적 토양 안에서 이것이 가능한가는 매우 심각하게 고민 해야 할 문제이다. 이것은 결국 한국의 스크린 쿼터, 마이너 쿼터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100분 토론을 보며 실망한 것은 옹호자의 감정적 호소는 둘째치고, 이것이 희망인가를 논하도록 당연히 진행되어야 하는 한국 영화의 현실에 대하여 패널의 대부분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오직 진중권 교수만이 우리의 산업구조에서 그리고 경제력 차이라는 명백한 현실에서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토론의 마지막 발언에서 겨우 끄집어냈을 뿐이다. 토론은 거의 정신을 못 차리고 엉뚱한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3. 결국, 네티즌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황우석 박사 때와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엄청난 희망을 담보로 걸었던 당시와 달리, 현재의 네티즌들은 정말 필요 이상의 광기를 부리고 있다. 영화에 대하여 어떤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 이미 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그들의 의지에 난도질 당했다. 나는 영화평론가들을 존경한다. 물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더더욱 존경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 영화 평론가들은 영화와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 산업을 경계한다. 산업이 원하는 것은 인류의 풍성한 문화가 결코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의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이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어떻게든 그 영화가 영화로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평론가에 따른 수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평론가들의 글들이 모두 옳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의 말이 모두 옳다면 그것 역시 문제다. 결국, 평론이 "오독의 역사"라면, 우리는 모두 그 모든 평론 속에 담긴 오독을 찾기 위해 또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담론의 형성이다. 그 평론을 문제집의 정답지를 보는 것처럼 대할 때 여기서는 큰 문제가 생긴다. 현재 네티즌들의 대다수가 그렇다. 물론, 여기에 진지한 담론을 선언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담론들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기에 현재의 네티즌들은 이미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 그것을 하나의"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맞고 틀림을 이야기하는 답안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틀린다고 받아들이면 더는 대화가 필요 없다. 틀렸으니까 혼이 나야 한다. 정답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정답만 되풀이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폭력이며, 독재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현상에 무척 겁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 또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떨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현상이 무서운 것이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미국에서 개봉하는 디워는 반드시 볼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좋게 보려고 애쓸 것이다. 적어도 나는 어떤 영화의 나쁜 점을 끄집어내려고 눈에 심지를 켜고 달려든 적은 없다. 내 인생의 시간을 왜 그런 소비적인 일에 낭비해야 하겠는가. 하지만, 이 영화를 우리 기술의 영화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볼 마음도 별로 없다. 기술의 발전이 나빠서가 아니다. 영화에서 기술은 돕는 도구일 뿐이다. 영화는 기술이 아닌 예술이다. 즉, 소통의 도구이다. 이러한 기준은 예술 영화에만 들이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화려한 기술을 가졌더라도, 나와 소통할 수 없다면 그 영화를 내가 즐겁게 봐야 할 의무는 없다. 그것이 아무리 한국 최고의 기술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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